숭례문(남대문) 앞에 있던 남지(南池)는 숭례문을 나서자 마자 보이는 곳이다. 일제시대에 이를 매립하고 평지로 만들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. 이 터를 찾아가보았다.
남대문 부근의 변천과정에 대한 논문으로 최자형, "숭례문과 주변 환경의 시대적 변화에 관한 연구,"(서울: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, 2017)을 참고할 수 있다. 이 논문의 14쪽에 남지(南池) 매립에 대한 단서가 언급되어 있다. 아래는 논문의 내용을 인용한 것임.
조선 세조 때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숭례문 외곽에 못을 파서 설 치한 것으로 알려지는 남지는 1907년 매워졌다. 『경성부사 제2권』에는 다 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.
9월 상순 세관 공사부의 손으로 남대문 북측 성벽의 취제공사에 착수해 10 월 초순 남대문 앞 현 일화생명빌딩의 위치에 있던 연못(남지)을 매몰했다 .”
아울러 『경성의 면영』에도 남지 관련 내용이 언급된다.
“남대문 외에 조선우선회사의 건물이 있다. 이 부근은 옛날 연못이 있던 곳으로 보통 남지라고 칭하고 있었다.”
기록 상 남지는 조선우선회사(朝鮮郵船會社) 부근 또는 일화생명(日華生命)빌딩의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.
조선우선회사(朝鮮郵船會社)는 남대문통 5정목(남대문로5가) 1-1번지
일화생명(日華生命)은 남대문통 5정목(남대문로5가) 1-2번지와 봉래정 1정목 104-1번지에 위치하여
남지(南池)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.
현재 남지는 매립되어 건물이 들어선 상태이다.
들어선 건물의 주소는 아래와 같다.
지번주소: 봉래동1가 104-1
도로명주소: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27
※ 그런데 남지 매립지점은 이 건물(숭례문학당)의 남단과 옆 건물(골드만 비뇨기과)의 중간의 공터 쯤으로 보이기도 한다. 그러나 그 위치를 지번으로서 특정하기 어려우므로 편의상 104-1번지로 살펴보았다.
남지가 찍혀 있는 사진엽서(1900년경)는 최자형의 논문 14쪽에 수록되어 있으나 그 출처가 명시되지 않아 출처 확인을 위해서는 추가 조사작업을 해야 한다.
일제가 설치한 광화문 앞 철길 (1) | 2023.03.20 |
---|---|
광화문 앞에 전차 철로 발견 뉴스 (0) | 2023.03.17 |
전주천+만경강 합류지점 (0) | 2023.03.05 |
삼남대로 (0) | 2023.02.11 |
추천(楸川, 가리내) (0) | 2023.02.11 |
댓글 영역